2020 나만의 3분기
올해를 크게 나누자면
- 영국 입국&탈출기 (1월 ~ 4월)
- 개발 취미기 (4월 ~ 7월)
- 개발자 전향기 (7월 ~ 12월)
로 나눌 수 있다.
영국 입국&탈출기 (올해 시작부터 4월까지) :
2019년 1월에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6월에 퇴사를 하고 그 뒤부터 나는 영국에 갈 희망으로 부풀어서 영어공부와 근근한 알바만으로 인생이 가득 찼었다. 그리고 그것이 올해 초에도 계속 이어졌고 나는 원래 3월 말에 영국으로 도착해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영국행 비행기를 3월 말로 끊어 놓고 2주간 지낼 숙소까지 모두 마련해 놓은 상황에서 2월 말 갑자기 한국에 코로나가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예약했던 베트남 항공은 정말 누구보다 빠른 손절로 한국발 비행기를 취소시켰고(그땐 배신감에 쩔었는데 다른 항공사들을 겪다 보니 이게 진짜 너무 고마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빠른 취소와 빠른 환불이 제일 감사하다.) 줄줄이 이어지는 다른 나라들의 한국인 입국 금지로 점점 불안해져서 예정일보다 한참 앞당긴 3월 6일에 출국을 했다. 영국 비자 시작 예정일이 19일이었기 때문에 그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옆 나라 프랑스에서 머물렀다가 19일이 지난 다음에 영국으로 가기를 기다렸다. 근데 역시 세상은 내 맘처럼 돌아가지 않는 게 프랑스에 코로나가 점점 퍼져서 원래 출발해야 하는 날보다 3일 전 락다운과 국경을 폐쇄한다는 뉴스를 들었고 급하게 밤새서 런던행 유로스타를 끊어서 프랑스를 탈출했다.
(여기서 느낀 교훈: 유로스타 전날에 끊으면 눈물 나게 비싸요 여러분ㅜㅜㅜㅜㅜㅜ 2시간도 안타는 거 같은데 32만 원...)
프랑스를 탈출해도 나는 여전히 19일로부터 한 달 안에 영국을 출국했다가 돌아와야 한 달짜리 임시비자가 아닌 제대로 된 거주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출국했다가 돌아와야 했다. 근데 웬걸. 유럽 전체가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는 때였어서 다음날에도 당장 입국 금지가 내려오는 마당이라 나는 예약했던 러시아행 표도 잃고 돈도 잃고... 또 영국 내 유럽 국가 대사관이란 대사관은 다 전화해서 확인해 보고 골랐던 네덜란드행 비행기도 비행기 탑승 바로 직전 거절당했다. (이때가 진짜 멘붕이었다. 수속 다 밟았는데 거부당하는 일도 있다는 걸 인생 처음 알았다.) 근데 여차저차 해결돼서 결국 거주증도 획득하고 영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한국인 모임도 알게 되어서 참석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래도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영국도 곧 락다운....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그냥 한국으로만 돌아가고 싶었다. 영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행은 쉬웠을까? 전혀! 네버!
돌아가기 직전까지 한숨도 놓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예약한 비행기들 줄줄이 캔슬 나고 새로 예약하려니 엄청 비싼 항공권만 남았는데 이게 언제 또 캔슬 날 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지내야만 했다. 실제로 아는 분은 공항까지 갔는데 그때 취소되셔서 갈 곳도 없고 어떡해야 할지 모른다고 우셨던 분들도 있다.
한국 회사들의 빠른 소통과 서비스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유럽을 탈출했고 사실 이때만 해도 나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와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가격리를 보내고 그 이후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개발 취미기 (4월부터 6월까지)
사실 난 가만히 있는 걸 오래 하지 못한다. 처음 대학에 진학하고 방학 때도 그냥 시간을 보냈던 적이 없고 심지어 마지막 학기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학교도 다니고 알바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워커 홀릭인 것 같다. 4월에만 해도 영국 상황이 나아지면 영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기다리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견디기가 조금 어려웠고(굉장히 무기력한 그 느낌이 싫었다.) 영국에 있을 때 내가 돌아와야만 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나는 전문성이 있는 무언가가 없어서 영국에서 락다운에도 할 수 있는 직업을 못 가지는 것이어서 그걸 극복하고자 뭐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뭘 잘할지 뭐가 재밌을지 모르니까 하나씩 도전해서 알아가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내 MBTI 추천 직업군 중에 개발자가 있길래 이것부터 도전하기로 했다. 개발의 ㄱ도 모르니까 탈잉에서 김병욱 님의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개론" 오프라인 강의를 듣고 스파르타 코딩 클럽으로 취미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다.
스파르타 코딩 클럽 8기를 들을 때도 전혀 가볍지 않았다. 프론트부터 백엔드까지 꽤 포괄적인 내용을 두루 가르쳐서 개발을 1도 모르는 내가 듣기에는 조금 벅찼다. 심지어 팀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지만 내가 수업을 들었던 팀에 전공자이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조금씩 시작하신 분도 있었고 개발팀이랑 가까이 지내는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못 알아듣는 말인데 그분들은 인풋이 곧바로 아웃풋이 되는 능력자 분들이라 혼자 어렵다고 말은 못 하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집에서 파닥파닥 거리며 복습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고 집 가서 복기를 두 번씩 해야만 겨우 이해했다. 다들 너무 빨라서 나에게 맞추면 다른 분들에게 수업이 전체적으로 느려질까 봐 하나도 이해 안 가도 모른다고 말을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젠 다시 그러지 말고 이기적으로 공부해야지. 근데 또 그렇게 공부하는 게 재미가 있었다. 지금 보면 너무 부끄러워 아무한테도 공개 못하는 코드지만 그때 완성했던 나의 66 Days habit tracker 프로젝트는 완성해놓고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동작하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고 점점 할수록 재미있어지는 개발의 세계에 눈을 떠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졌다.
개발자 전향기 (7월부터 오늘까지)
올해 초의 우여곡절 영국 출국 한국 귀국을 겪으면서 나에게 남은 건 반 토막 난 통장잔고였기 때문에 나는 부트캠프에 돈을 투자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또 부트캠프에 대한 워낙 안 좋은 말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인프런이라는 좋은 플랫폼을 이용해 강의를 수강하기로 했다. 이렇게 제대로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처음 김병욱 님의 강의들 들을 때 해주셨 던 말이었다.
"국비 교육 학원이든 부트캠프든 여러분께 가르치는 건 별로 없어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예요. 하지만 사람은 의지가 부족하죠. 12시간 꼬박 공부할 각오가 없으면 나를 강제해 줄 수 있는 교육기관을 찾는 게 더 나아요. 12시간으로 6개월 하면 취직할 수 있지만 6시간으로 공부하면 12개월이 아닌 2년을 해도 불가능할 수 있어요."
이 말이 나에게는 강력하게 남았다. 열두 시간. 내가 가진건 몸뚱이, 노트북. 시간뿐이니 한번 해보자 싶어서 생활코딩에서 html 기초 강좌부터 보기 시작했다. 그땐 이 강의가 좋은 건지 별로인지도 생각 못하고 그냥 들었다. (지금 보니 초반에 들었었던 css로 웹 퍼블리싱하는 강좌는 정말 별로 인 것 같다.) 그렇게 html, css, javascript 강의들을 들으면서 클론 코딩도 해보고 응용해서 페이지 만드는 것도 꽤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인터렉티브 웹 인강을 들으면서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포토샵으로 이것 저것 이미지 추출해서 만들었던 우주 돼지가 참 마음에 든다. 다시 보니 이거 바탕으로 미니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
우주 돼지를 완성한 날의 T.I.L, 링크 타고 가면 우주돼지 영상을 볼 수 있다. 다시 읽어보니 이때부터 깃 사용을 제대로 할 줄 몰라 고민했었나 보다.
이렇게 주중에는 코딩을 하든 필요한 무언가를 하든 진짜 12시간씩 했다. 정말 일이 있어서 적게 하는 날도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10시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근데 요즘, 특히 이 2주간 코로나가 걱정되어서 스터디 카페에 가지 못해서 집에서만 했더니 해이해지고 기분도 우울해져서 지키지 못했다.ㅜㅜ 정신 차리게 이번 주부터 다시 스터디 카페에 아침부터 나가기 시작했고 코로나 걱정보다 게을러지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새로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T.I.L도 꾸준히 작성했고 커밋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시점에 T.I.L과 회고들을 합쳐보면 146개를 작성했더라.
커밋도 1일 1 커밋 이상하려고 노력했다. 혼자 공부할 땐 뭔가 내가 하루 동안 헛되이 하지 않았다는 지표가 필요했었는데 이게 그 지표로 삼았던 것 같다. 코드 숨 하면서는 주로 1주에 1~2개의 풀 리퀘를 통한 커밋만을 하게 돼서 매일 코딩을 해도 내 커밋으로 올라가지 않던 날이 있어서 비기도 했다. 처음에는 약간 조바심도 났는데 사실 그 전에는 의미 없는 커밋도 채우기 위해서 했던 것도 있었던 걸 깨달았고 코드숨을 진행하면서 그날 하루의 네모는 비어있는데도 내 실력이 늘어서 1일 1 커밋은 그냥 형식일 뿐 중요한 게 아니라 그날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래도 요즘은 알고리즘 공부를 매일 한다는 목표로 1일 1커밋을 지향하는 중이다. ㅎㅎ 마음이 갈대인가보다.)
그러다가 공부의 한계를 느꼈다. 응용해서 만들어는 보는데 이게 제대로 된 건지 내가 공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이 들어서 그 고민 끝에 코드 숨을 찾아 듣게 되었다. 코드 숨은 진짜 내 코딩 공부에 부스터를 달아주었다. 일주일 다 쏟아부어서 과제를 진행했다. 스파르타 코딩 클럽과 마찬가지로 나만 모르는 기분이 들어 또 파닥파닥 거리면서 따라갔지만 모르는 건 모른다 할 수 있고 잘못되었는데도 모르고 넘어가는 것들은 트레이너 분들께서 방향을 잘 잡아주셔서 삼 개월 동안 진짜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bbhye1.tistory.com/180?category=934836
이렇게 지금까지 왔다. 처음 시작할 땐 뭣도 모르고 6개월이면 난 어느 정도는 다 할 줄 알 거야라고 생각했었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아 계속 달리는 중이다. 그 곁에는 코드 숨 트레이너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하게 달리고 있다.
깨달은 점
매년 다이내믹 하지만 올해 더 다이내믹하게 지나가면서 문득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인복과 운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입시 시작하면서 만났던 미술학원 선생님도 진짜 좋으신 분이었고 중간에 연극을 하며 만났던 연출님, 극단 사람들도 자기 신념이 강하진 멋있는 분들이었다. 또 첫 직장으로 들어갔던 고이 스튜디오에서도 상사가 프로정신이 강하신 분이시고 업계 동료분들이 존경하는 그런 분이셔서 일하는 자세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 신청하게 된 코드 숨이 이렇게나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프로정신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 모든 게 다 행운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문득 그 모든 게 다 행운 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입시 학원도 내가 찾아서 선택했고 연극도 친구가 몸담고 있었던 극단에서 잔심부름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대학 단톡 방에 공고를 올렸었는데 내가 바로 연락했고 그러다가 연극이 좋아져서 그다음 기수 극단 활동을 바로 신청했다. 스튜디오도 전공과 큰 관련은 없어서 지나칠 수 있었지만 기회가 왔을 때 지나치지 않고 잡아서 일하게 되었다. 개발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에도 필요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 스파르타 코딩 클럽도 코드숨도 찾아서 직접 경험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나는 그동안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빠르게 나왔다. 그 결과 좋은 사람들과 만나 시너지가 나서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꾸준히 찾아다니는 능력이 있다. 그동안 나의 장점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이게 내 장점이지 않을까? 면접에서 "자신의 장점이 뭔가요?"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게 생겨서 기쁘다. 적다 보니 자뻑같고 약간 오글거리긴 하지만ㅎㅎㅎ 이걸 깨달은 게 올 해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을 1 획득했다. ㅎㅎㅎㅎ. 이걸로 자기 PR 열심히 하고 다녀야겠다.
새해 다짐
아직은 햇병아리지만 개발자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나도 내가 받은 만큼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잘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내년에는 도움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다짐하면서 회고를 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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